[미셸김 원장 칼럼] 살다보면 다 그런 것을

요즘에는 즐겁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옛날에는 자신의 분수를 알아 조그만 집이라도 그 안에서 즐겁게 살 줄 알았다. 요즘에는 쉽게 입에서 나오는 말이 수억, 아니 수십억을 입에 달고 말해야 그 사람이 대단한 것 처럼 보인다. 물질로 사람을 점수 매기는 사회, 그래서 가정은 사랑도 행복도 없어지고, 인성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자녀들은 가족의 가치, 행복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 간다. 그냥 큰 것만을 가지고 살아야 사는 것 같고, 사람은 명품이 아닌데 명품을 가져야 만 자신이 명품인 줄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많이 갖고 있지 않아도 멋있는 운치를 아는 사람, 남에게 향기롭게 보이는 삶이란 이미 사라졌다. 덩달아 시류에 쫓기지 않고 주어진 여건하에서 느긋하게 사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런 사람들과 따뜻한 차 한잔이라도 나누고 싶은데 어디에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라도 때 안 묻고 맑은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을까, 사회에 먼지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 조용한 행복을 누리는사람이 보고 싶다. 사람이 귀해서 목마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생 살다보니 별 꼴을 다 봐요.” 이런 말을 종종 듣게 된다. 허접스러운 인간을 만났던가 보다. 말 같지 않은 말도 쉽게 내 뱉고, 조금 더 가졌다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조금 더 배웠다고 자기보다 덜 배운 사람 앞에서 허벌나게 떠드는 사람, 자기 신앙만이 가장 옳다고 성경책은 항상 옆에 끼고 다니지만 언행은 거지나발같이 게우적 거리면서 시끄럽게 잘난 척 하는 사람, 우리들이 흔히 보는 군상(群像)들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개미소리 조차 못 내면서 약한 사람 앞이면 기고만장하니 별 꼴 다봐요 하는 말이 나온다. 역시 ‘살다보면 다 그런것을’ 하는 탄식 섞인 말이 나오게 된다.
항상 아끼는 수필집이 있다. 오래전에 읽었지만 읽고 또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각으로 나를 미소짓게 만드는 책. 한국수필의 대가라고 불리는 피천득 선생의 수필집이다. 해방전, 일본에 공부하러 갔을 때, 피 선생이 머물렀던 일본인 가정에 어린 소녀가 있었는데 그 때의 회상을 글로 적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세 번째 만났던 아사코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몇십년 전의 회상을 이렇게 멋진 글로 남겼다. 그날의 슬픔도 아쉬움도 있었지만 훗날 독자들에게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을 읽게 해 주었다. 이것 또한 살다보면 세월이 다 그런 것을.
자연을 나는 참 좋아 한다. 시간 만 허락되면 흙길을 밟고 싶어 자연을 찾아 간다. 우리 옛 시조에 이런 노래가 있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푸른 산도 자연이고 흐르는 물도 자연이다. 이런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란 몸이니 늙기도 자연에 맡기라는 노래라고 한다. 지난 봄에 페이슨 산속을 찾아 갔더니 꽃들이 한창 피어 오르느라 합창을 하고 나뭇잎들이 푸릇 푸릇 초록색을 다투어 뽐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잊고 살아왔다. 커피집 뒷마당의 귀여운 다람쥐가 항상 머리에서 맴돈다. 예쁘고 쪼그마한 눈망울을 맞추면서 앙큼한 두손을 마주 잡고 도토리를 까 먹는 모습을 보니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 되새겨 졌다. 어떻게 우리는 자연을 선물로 받았는데 아낄 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고 자연 속에서 행복해 하는 다람쥐 만도 못한 인간은 아닌가.
오늘 밤은 성시경의 ‘거리에서’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자연속의 나를 생각해 보고 지나온 나의 청춘을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밤을 가져 본다. 살다 보면 다 그런 것을…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 날들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내 혼의 양식을 대주신 분은 누구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는 밤이다.
07. 07. 2014
아리조나 한국문화원장
602-361-3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