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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나바호 족의 '멀고도 먼 길' – 약탈을 일삼는 나바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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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8월15일 아침 7시, 아직도 미명이 채 가시지 않은 뉴멕시코의 작은 마을 라스 베가스 근방에 미 육군의 서부 주둔군이 도착해 야영장을 마련했다. 푸른 제복의 병사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에 작은 마을 라스 베가스는 순간 술렁거렸다. 놀란 주민들은 마을 앞 광장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고 서로 귀를 맞대었다. 얼마 후 근엄한 표정의 사령관 키아니 (Stephen Watts Kearney 1794.8.3~ 1848.10.31.캘리포니아 군정장관 역임 )준장이 얕으막한 흑벽돌 집 지붕에 올라가 광장을 가득 메운 주민들에게  긴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는 여러분의 적이 아니라 미 합중국의 재산을 접수하라왔다”고 말하고 “이제부터는 미합중국 국민이 된 여러분을 산에서 내려와 어린이나 여인네를 납치하여 노예로 팔아먹는 아파치나  나바호로부터 지켜주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카아니 장군의 서부 주둔군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멕시코를 몰아내고 뉴 멕시코등 일대를 점령하고 이제 라스 베가스도 점수한 것이다. 그러나 카아니 장군이 약속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합중국 병사들은 미군과 평화협정을 맺고 돌아가던 나바호 노전사 나르보나의 등에 대포를 쏘아 살해하자 미군과 나바호 간의 갈등의 골은 끝간데 없이 깊어만갔다.


너른 대지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는 12,000여 명의 나바호 부족들은 수백년간 누구의 간섭도 없이 들짐승처럼 자유롭게 살아왔다. 이들은 들에서 곡식을  수확하여 양식으로 삼고 때로는 짐승을 사냥하며 여유롭게 살아왔다. 그리고  인근 필요한 물자는 인근부족들을 습격하여 마련하고 심지어 아내가 필요하면 여인네도 납치했다. 이 너른 천지에서 그들을 간섭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그들은 너른 대지의 주인이었다.


낯선 외지인들이 영토를 차지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조상대대로 전해내려오던 자신들의 땅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신성한 땅을 헤집고 노란 돌을 찾는 가하면 자신들의 양떼가 풀을 뜯던 초원을 차지하고 “낯선 사람들”이 가축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연 영토를 빼앗겨 곡식을 키우지 못하고 양떼를 기를 수 없게된 나바호들은 부족한 양식과 물자를 보충하기 위해 이웃 부락이나 정착민 약탈이 점점 심해졌다.

나바호들의 약탈이 점점 늘어나자 정착민이나 뉴 멕시칸들은 주민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한 카아니 장군을 찾아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을 호소했다. 카아니 장군이 처음 나바호 징벌을 위해 병력을 출동한 것은 부임 후 한달만인 1846년 9월16일. 그는 미주리 민병대를 동원하여 약탈을 일삼는 나바호 부족과 유트 인디안을 징벌하러 나섰다. 그래도 도처에서 나바호들의 약탈이 끊이지않자 카아니 장군은 마침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미주리 민병대의 도니팬(Alexander W. Doniphan) 대령을 10월 11일 뉴 멕시코 변방으로 급파하여 나바호 부족들을 징벌하도록 조처했다.

도니팬 대령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는 나바호들을 전투로 완전 제압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일면 전쟁, 일면 화평정책을 쓰기로했다. 도니팬 대령은 즉시 뉴 멕이코의 아비퀴에 주둔 중인 길핀 소령과 체볼타 에 주둔 중인 잭슨 소령에게 약탈하는 나바호는 발견즉시 사살하고 뉴 멕시코의 갤롭 동쪽 15마일 근처 리오 푸에르코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쥬니 산 기슭 북쪽에 있는 베어 스프링 (Bear Spring)에서 합류하도록 명령했다.


나바호 족과 평화협상을 시도


한편 잭슨 소령은 산타 페에서 열릴 예정인 백인과 뉴 멕시칸, 그리고 나바호 부족간의 3자회담에 이곳 나바호 부족도 참석시키기로 했다. 잭슨 소령은 부관처럼 데리고 다니는 테일러 산 근방의 작은 촌락의 부족장 안토니오 산도발을 나바호의 여러 부족장에게 보냈다. 그는 나바호들이 평화협상에 응하면 백인들의 징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했다. 산도발은 많은 부족을 거느린 부족장들을 설득하고 2주만에 돌아왔다. 산도발은 많은 부족장들이 백인과의 평화협정에는 동의하나 뉴 멕시칸과는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고 잭슨 소령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부족장들은 먼저 백인대장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바란다고했다. 

나바호 부족장들이 산타 페 회의에 미온적이자 잭슨 소령의 부하 레이드 대위가 나섰다. 레이드 대위는 나바호족이  백인들의 강력한 힘을 미쳐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평화협정에 미온적이라고 생각했다. 레이드 대위는 병사 30명과 15일치 양식을 실은 노새 3마리를 끌고 산도발과 그의 12살짜리 아들을 안내인으로 삼아 나바호족의 본거지인 세이 협곡으로 향했다. 

레이드 대위는 10월20일 5일간 100 마일의 여정 끝에 나바호 부족들이 자주 모임을 갖는 베어 스프링 계곡에 도착했다. 일년내내 물이 넉넉하게 흐르는 베어 스프링 계곡에는1천여 마리의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기름지고 너른 계곡에는 수확을 앞둔 곡식이 누렇게 펼쳐져 있었다.


노전사 나르보나와  첫 번째 회담


이곳에서 레이드 대위는 이후 백인들과 나바호 부족 사이에 깊은 갈등을 몰고올 노전사이며 투스카-튜니차 산 동쪽 끝에 큰 무리를 이루고사는 나바호 부족장 나르보나와 대면한다. 나르보나는 항상 백인들과 화평을 주장하여 부족들은 그를 “평화를 말하는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젊은 시절 외적과 전쟁을 할때는 전사들을 지휘한 80여세의 노전사 나르보나를 부족들은 부모 이상으로 존경하고 따랐다.

레이드 대위를 만나 본 나르보나는 곧 전 나바호 부족장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를 알리기위해 전령들은 사방으로 달려갔다. 3일 후 베어 스프링 계곡에는 회의에 참석하러 온  부족장과 그를따라나선  나바호들로 부산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맞댄 나바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계곡은 양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전사들은 말을 달리며 누가 빠른가 경주를 하고 웃음소리,노래소리로  계곡은 완전 축제분위기였다.


노전사 나르보나를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참석한  부족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레이드 대위와 함께 온병사들은 소총을 한곳에 모으고 맨손인채 도열하여 회의를 지켜보았다. 잠시후 레이드 대위가 부족장들의 가운데에 서서 ‘왜 백인들과 평화협정을 맺어야하는가’를 설명하고 이를 위해 산타 페에서 열리는 평화협정에 대표를 파견할 것을 권했다. 레이드 대위의 설명은 산도발이 통역했다. 이후 나바호 부족장들은 밤이 깊도록 소리를 높여가며 토의했다. 좀처럼 결론을 내지못하자 노전사 나르보나가산타 페에 대표를 보낸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협상을 완수하고 레이드 대위가 산타 페로 돌아왔으나 군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회의를 취소했다. 

이에 실망한 도니팬 대령은 독자적으로 나바호 부족과 평화협정을 맺기로했다. 11월22일 도니팬 대령으로부터 12월20일 베어 스프링스 계곡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은 길핀 소령은 자신의 부대원 이외에 멕시칸 및 프에블로  용병을 추가하여 12월의 눈보라를 헤치며 뉴 멕시코의 리오 차마 야영지를 나섰다. 도니팬 대령도 잭슨 중령(그는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과 병사들을 대동하고 베어 스프링으로 향했다. 길핀 소령은 12월 18일 한 겨울의 폭설을 뚫고 약속장소인 베어 스프링 입구인 세이 협곡 근처에 도착했으나 약속일을 하루 넘긴 다음 날 21일 도니팬 대령과 합류할 수 있었다.


미군측 병사 150명과 나바호 측 전사 5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측은 협상을 벌였다. 미군은 나바호 측에게 백인 정착민이나 뉴 멕시칸 주민에 대한 일체의 약탈을 금할 것을 요구했다. 대신 나바호 측에 필요한 물자는  무상으로 지원할 것이니 이미 약탈해간 물자나 포로는 즉시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바호 측의 요구대로 더 이상 나바호 영토를 잠식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양측은 평화회담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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