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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북미주 지형을 바꾼 염장대구와 비버모피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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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고양이 만한 담비를 찾는 탐욕스런  인간들은 동토의 땅 시베리아를 황폐화시켰다. 시베리아에 담비가 사라지자 담비대신 ‘부드러운 황금’이라 불리우는 비버와 ‘바다의 빵’이라는 대구를 찾는 탐욕스런 인간들은 신천지 북미대륙으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몰려든 인간들은 순박했던 원주민들을 타락시켜 급기야 서로 죽이고 증오하는 근 100여년에 걸친 잔혹한 살육으로 몰아 넣었다. 오직 탐욕으로 가득찬 일부 유럽인들은 더 많은 부를 찾아 원주민들에게 화승총을 쥐어주고 상대방 영토를 침범하여 더 많은 비버모피를 잡아오도록 했다. 이미 철제 단도와 주전자, 도끼 등 편리한 생활도구에 익숙한 원주민들은 더 많은 유럽산 물품을 확보하기위해 서로 죽이고 빼앗는 또다른 탐욕스런 인간이 되었다. 하늘이 열린 이래 해와 달, 그리고 별을 헤며 누대에 걸쳐 살아온 원주민의 땅은 탐욕스러 인간 군상이 헤집고 다니면서 어머니의 모태처럼 순수한 땅은 파괴되었다. 인간의 남획으로 비버와 사슴, 노루, 곰같은 동물은 날이 가면서 개체수가 줄어들고 동물들의 낙원은 공해로 찌들었다. 그리고 오랜 전쟁과 유럽인들에게서 전파된 전염병으로 원주민들은 엄청나게 줄었다.

모피를 찾는 이주민과 유럽상품에 익숙한 원주민
종교의 자유와 더 풍요로운 삶을 찾아 신천지 북미대륙을 찾은 유럽의 이주민들은 새로운 땅에 적응하면서 부지런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생존에 급급했다. 아주 가끔씩 숲을 찾아 사슴이나 토끼같은 작은 짐승을 사냥했다. 때로는 여울이나 바닷가를 찾아 조개며 작은 물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이웃 원주민들이 들고온 비버모피나 사슴가죽을 단도나 도끼, 주전자를 주고 교환했다. 원주민의 방문이 잦아지자 정착민들은 자신들이 평소 마시던 위스키나 럼주를 원주민들과 나누어 마시고 전해주자 이 맛에 익숙해진 원주민들은 더 많은 모피를 들고왔다. 
유럽인들에게 비버모피가 소개되기는 16세기 초, 뉴펀드랜드를 찾은 유럽 각국의 어부들은 비버모피를 유럽대륙에 소개했다. 1492년 3월 5일 이탈리아 제노아 태생 존 캐봇 (c1450-c1499)은  영국 헨리 7세의 후원으로 아들과 함께 바닷길 건너 신대륙 탐험에 나섰다. 탐험중 그는 뉴펀드랜드 섬 라브라도에 상륙하고 인근 해안에 거대한 어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존 캐봇은 귀국 후 뉴펀드랜드의 이같은 사실을 유럽에 알렸다. 이후 캐나다 인근 뉴펀드랜드 섬 연안에는 유럽의 네델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의 어부들이 몰려들었다. 한때 이 어장에는 유럽의 각국 어선 350여척이 모여들어 물고기를 잡았다고한다. 유럽의 어선들 틈에는 작은 커누를 몰고온 원주민 어부들도 고기를 잡았다.

뱃사람들이 전한 ‘부드러운 황금’ 비버모피
원주민 어부들은 변변한 옷도 갖추지못한 채 온몸을 황금빛 감도는 비버모피로 감싸고 손과 목에는 비버모피로 만든 장갑과 목도리를 두르고 북극의 바닷바람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럽의 뱃사람들은 또한 근방에서 잡은 대구를 염장처리한 후 값이 저렴한 신천지 목재나 물품과 함께 유럽의 시장에 내다팔았다. 선편으로 물품을 운반하려면 선원들은 차가운 북대서양의 강풍과 싸워야했다. 자연 선원이나 어부들은 원주민들이 착용한 비버모피를 찾게되고 이들이 착용한 비버모피는 이후 유럽사회에 흘러들었다. 곱고 아름다운 비버모피는 ‘부드러운 황금’으로 귀족 사회의 귀여움을 받게 되었다. 비버모피는 유럽에서도 특히 프랑스에서 상류층의 사랑를 차지했다. 
비버모피는 프랑스의 항해사겸 탐험가 자끄 까르띠에 (1451.12.31-1557. 9.1)에 의해 처음으로 프랑스 사회에 대량으로 소개되었다. 자끄 까르띠에는 1534년 찰스 왕의 명을 받고 캐나다 연안 탐험에 나섰다. 그는 세인트 로렌스 만에 정박한 후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자끄 까르띠에 일행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원주민과 대면하고 그들을 ‘퍼스트 네이션’이라고 불렀다. 자끄 까르티에 일행은 이후 마주하는 원주민들과 단도, 주전자 등 유럽산 금속제품과 비버나 사슴 등 짐승의 모피와 교환하고 한 배 가득 신천지 산물을 싣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까르띠에는 두차례 캐내다 일대를 탐험하고 세인트 로렌스 강을 따라 뉴프랑스라는 땅에 퀴벡이라는 정착지도 마련했다. 이후 이곳에는 물품교역소가 들어서 원주민으로부터 비버모피를 거두어들였다. 뉴프랑스 정착민들은 더 많은 비버모피 수집을 위해 원주민들에게 화승총이나 원주민들이 즐기는 위스키나 럼주를 주고 이들을  유혹했다.

농사대신 총을 들고 사냥에 나서는 정착민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천지를 찾은 유럽의 정착민들은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농토에서는 힘들게 일해도 작은 소출밖에 거두지못했다. 그러나 모피 수집상에게 원주민들과 교환한 모피를 높은 값에 처분할 수있자 이들은 서둘러 농기구를 버리고 원주민을 따라 비버 등 동물사냥에 직접 뛰어들었다.
프랑스가 뉴프랑스를 중심으로 비버 모피수집에 열중할 때 해상 강국인 네델란드는 인도네시아의 바타비아 (* 오늘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영국보다 2년 늦은 1602년 네델란드 동인도회사를 세웠다.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로 기업을 공개하고 불특정 다수인 일반인에게 주식을 공개하여 엄청난 자본을 축적했다. 네델란드는 이같은 자본을 바탕으로 선박건조에 신기술을 도입하여 당대 최강의 상선대와 함대를 꾸렸다. 그리고 가볍고 빠른 선박을 건조하여 포르투갈과 함께 세계의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다. 이같은 자본을 바탕으로 해상을 통한 원거리 탐사에도 참여하여 동인도회사가 지원한 영국의 헨리 허드슨은 1609년 뉴욕 만을 발견하고 이어 이곳에 네델란드의 서인도회사를 설립한 후 비버모피를 비롯한 신세계 상품을 유럽에 실어나르고 유럽의 상품을 신세계로 유통시켰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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