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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악마의 길' 지나 '늘 푸른 겨울의 땅' LA 도착: 산타오라야에서 휴식 후 부대를 다시 짜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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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4년 3월16일 수요일부터 3월17일 목요일까지 (투박 출발 68일에서 69일까지)
밤새 눈과 비가 섞여 내렸다. 이같은 눈과 비는 오전내내 계속되었다. 오후 들어 날씨가 맑아지자 일행은 다시 전진했다. 산카를로스 길을 따라 일행은 비옥해 보이는 오늘날 카후이야 (Cahuilla)라고 부르는 곳으로  하산했다. 일행은 다시 9마일가량 전진한 후 디 안자가 엘 프린시페 (El  Principe)라고 부른 곳에 야영장을 차렸다. 이날 밤도 계속 눈비가 섞여내렸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일행은 늦은 오후 다시 발길을 옮겼다. 주위는 온통 잘 자란 야채며 곡식이 바람결에 몸을 뒤척였다. 눈을 돌리면 주위는 온통 캘리포니아의 늘 푸른 겨울 한철이 낯선 유럽인에게 ‘이곳이 천상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상 최고의 땅 캘리포니아는 이처럼 디 안자와 가르세 신부에 의해 유럽인들에게 이주의 길을 소개하게 되었다.

1774년 3월18일 금요일부터 3월20일 일요일까지 (투박 출발 70일, 71일)
계곡을 끼고 북서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따라 일행은 좁다란 계곡으로 들어섰다. 풀마디가 굵은 잘 자란 잡초들이 대원들의 발길을 더디게 했다. 도끼를 질머진 대원 6명이 앞장서서 길을 내었다. 이렇게 3마일을 전진했다. 도끼를 들고 길을 내주던 대원들은 늘어진 나무가지를 도끼로 치면서 길을 내었다. 어느새 비교적 너른 길에 들어서자 산 주변은 온통 흐드러진 꽃동산 사이로 도토리 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 그 사이로 다람쥐며 토끼가 놀라 뛰었다. 흐르는 계곡물은 어찌나 맑은 지 꼬리를 흔들며 달아나는 물고기가 한 눈에 보였다. 제방 주위에는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으로 주위가 환했다. 흐르는 계곡 물줄기가 갑자기 눈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그것은 눈이 아니라 흐르는 물살을 가르는 거위떼였다. 일행은 오늘의 하신토 (Jacinto)계곡을 지났다. 이곳에서 야영한 대원들은 날이 밝자 다시 북서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겁없이 따라붙는 원주민들이 늘어났다. 디 안자는 마주하는 원주민들에게 유리구슬같은 선물을 나누었다. 일행은 거위가 흰 눈처럼 하얗게 덮은 호수를 지나며 이곳을 소노라 지사 안토니오 부카렐리를 기려 산안토니오 디 부카렐리 (San Antonio de Bucareli )라고 불렀다.
날이 밝자 일행은 아침 8시 30분 북서쪽으로 뻗은 길에 들어섰다. 오른편에 병풍처럼 늘어선 산버나디노 (San Bernardino) 산은 하얀 눈으로 덮혀 있었다. 늦은 아침 일행은 산타아나 (Santa Ana)라고 이름지은 주위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강에 도착했다. 오후 4시경이었다. 마땅한 건널목을 찾지못한  일행은 강을 건널 다리를 만들었다. 저녁무렵 들판에 이동 거주지인 란체리아에서 생활하는 원주민들이 타라발에게 다가와 산가브리엘 사투리로 “당신들은 산디에이고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타라발을 대신해 디 안자 사령관은 “우리는 달이 세번이나 뜨는 동안 동쪽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디 안자는 “그곳에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군인들이 살고있다”고 말해주었다.

1774년 3월 21일 월요일부터 3월22일 화요일까지 (투박 출발 73일부터 74일까지)
눈뜨자마자 대원들이 앞장서 임시로 만든 다리를 건넜다. 마지막으로 노새 한 마리까지 별다른 사고없이 강을 건넜다. 날씨는 단조로운 들판을 지나기에 는 쾌적했다. 아직도 멀리 오른편 산은 하얀 눈으로 덮혀 있었다. 가르세 신부는 이 길을 지나며 필기구를 꺼낸 후 북-북동쪽으로 향하는 길을 바라보며 “이곳 주민들은 이 길은 산루이스 오비스포 선교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라고 적었다. 일행은 저녁무렵 버드나무와 느름나무, 오리나무가 경계를 이룬 곳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이후 타라발은 이곳을 산안토니오로 착각했으나 디 안자는 이곳은 곰들의 계곡 즉 Arroyo de los Osos라고 정정했다. 목적지 산가브리엘 선교원이 지척에 보이자 모두들 감격의 함성을 질렀다. 대원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하기 위해 아침 7시 야영장을 서둘러 출발했다. 날씨는 며칠째 쾌적했다. 마침 우기철이라 하얗게 덮었던 눈은 3월의 빗물로 녹아내려 흐르는 눈녹은 물은 시원하게 흘러갔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멀리 산가브리엘 선교원이 희미하게 저녁 햇살 사이로 눈에 들어왔다. 산가브리엘 건널목에 이르자 일행은 석양무렵 건널목을 무사히 건넜다.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일행이 모습을 나타내자 사제는 놀란 입을 다물지못했다. 사제나 주민들은 언젠가부터 뉴스페인에서 육상으로 일단의 탐험대가 산가브리엘로 오는 중이라는 소문을 들었으나 누구나 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막상 디 안자 사령관과 대원들을 마주한 사제나 선교원 사람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경악하면서도 불가능이 실현된 현실에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막상 불법 탈영한 타라발의 신상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지은 죄보다 그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실현한 공은 죄보다 엄청나게 뛰어났다. 누구도 그의 죄를 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선교원의 누구도 탐험대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었다. 당장 선교원측은 갑자기 들이닥친 대원들을 돌보아야 했다. 당시 산가브리엘 선교원은 캘리포니만을 통해 보급품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험한 뱃길과 바람으로 보급품 수송에 항상 문제가 따랐다. 그렇지 않아도 모자라는 보급품으로 전전긍긍하던 선교원은 큰 걱정거리를 떠안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탐험대원과 노새, 말 , 젓소를 몰고간 디 안자 사령관이 도울 수 있는 일이라곤 탐험대원들의 몫으로 노새 등에 싣고 간 약간의 식량을 선교원 측에 제공하는 것뿐이었다. 당시 알타캘리포니아에는 5개의 스페인 정착촌이 있었다. 정착촌에서는 정착민을 위한 약간의 양식만 보급할뿐 대부분 필요한 물품은 캘리포니아 만을 통해 해상으로 운송했다. 그러나 거친 파도와 바람으로 해상에 의한 공급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정착민들은 캘리포니아 만으로 입항하는 보급선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 후 디 안자는 ‘근자에 뉴스페인 측의 누에바 갈리시아 프리게이트 (Nueba Galicia Frigate)호가 많은 보급품을 싣고 산디에이고 항에 입항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당장 디 안자는 산디에이고로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기로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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