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콜로라도 강을 건너 산가브리엘을 향해-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전 대원을 4개로 나누어 출발하여 식수 조달
일행이 산타오라야에 도착하자 많은 원주민들이 모퀴이 담요 (Moqui Blanket)를 들고나와 거래하자고 졸랐다. 그리고 지친 대원들이 평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을 안내하겠다고 유혹하고 댓가를 원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이날밤 탈진한 대원들을 위로하기위해 모처럼 전 대원들에게 가져온 브랜디술을 풀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취한 대원들때문에 야영장은 오합지졸의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디 안자 사령관과 폰트 종군사제간에는 불화가 일기도 했다. 디 안자의 시종과 요리사가 과음으로 다음날 기상하지 못해 디 안자 사령관은 아침을 거르기도 했다. 종군 사제 폰트도 마찬가지였다. 이같은 과음 소동으로 일행은 위도 북위 32도 33부에서 이틀간 체류했다. 가르세 신부는 원주민 전교차 남쪽으로 향했으나 통역은 그곳 부족들에게 살해될 것이 두려워 따라가기를 거부했다.
1775년 12월 9일 토요일부터 12월13일 수요일까지 (호르…출발72일부터 76일까지)
18세기 무렵, 오늘의 멕시코 국경을 지나 콜로라도 강에 이르는 살튼 (Salton)바다에서 남동쪽에 있는 기름진 분지에 사는 부족들은 이웃 친족들과 어울려 살기가 어려웠다. 강을 끼고 사는 코하트 부족들은 앞을 가로막는 험한 산때문에 서쪽에 사는 친족들과 쉽게 어울려 살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 정착자들도 산속에 사는 부족을 코하트 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번에도 디 안자 사령관은 산속에 사는 부족을 여타 소수부족으로 여기고 무시했다. 길이 1백여 마일, 폭 50여 마일의 타원형 대지에는 십자가 모양의 둔덕있다. 그곳에는 소량의 식물만 자라고 식수도 거의 나오지 않아 디 안자는 제1차 탐험 때 이곳에서 무척 고전했다. 그러나 이번 제2차 탐험대는 그 규모가 엄청 컸다. 산타로사를 지나 산 세바스티안에 이르는 동안 디 안자 사령관은 바짝 긴장한 채 만전을 기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우선 식수 확보에 치중했다. 디 안자는 식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전 대원을 4개 분대로 나누어 출발시켰다. 각기 다른 시간과 날짜에 떠난 분대는 3일 후 일정한 약속장소에서 재집결하기로 했다. 각 분대는 앞서 출발한 분대가 고갈시킨 식수가 보충될 시간을 계산하여 출발시켰다.
밤새워 우물을 파서 식수를 확보하다
제1진은 디 안자 사령관과 종군사제 폰트 신부와 12명의 병사와 그 가족이 속했다. 그리고 짐을 가득 실은 노새 무리는 12월 9일 출발했다. 두번째와 세번째도 12명의 병사와 그 가족으로 꾸렸다. 그리고 짐 실은 노새와 말을 그리할바 (Grijalba) 상사와 모라가 (Moraga)중위가 각기 24시간의 시차를 두고 출발했다. 이들은 산타오라야를 출발하여 산세바스티안 북쪽에 들어서기 전 엘 카리잘 (El carrizal )과 라스 앙구이타스 (Las Anguitas)와 산타로사를 각각 출발했다. 마지막 제4 분대는 가축을 모는 목동과 이미 출발한 분대에서 제외된 병사들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약 350여 마리의 소떼를 몰고 곧장 산타오라야를 출발하여 북서쪽에 있는 산세바스티안으로 향했다. 이미 출발한 3개 분대가 택한 남쪽 노선은 비교적 식수 구하기가 용이한 산타로사와 가까웠다. 이 길은 또한 라스 앙구스티아스 (Las Angustias)와 산세바스티안 사이를 연결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4번째 분대는 오늘의 안자-보레고 (Anza-Borrego) 국립 공원인 카요테 Coyote) 계곡 남쪽 끝자락에서 만나기로 사전 계획되었었다.
디 안자가 지휘하는 제1분대는 12월 9일 오전 9시 30분 산타오라야를 출발했다. 같은 시각 가르세 신부와 통역은 원주민 마을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다. 길은 평탄했다. 그러나 모래투성이에다 염분이 많아 잘 자란 초목이나 나무는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햇살에 시든 잡목이나 가시나무만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냈다. 일행은 엘로사 (El Rosa)에서 거의 마실 수 없는 흙탕물이 고인 작은 연못과 우물을 지나 오후 3시 30분경 엘카리잘에 도착했다. 엘카리잘에는 갈대밭만 무성하고 염분투성이 우물물은 마실 수 없었다. 제1진은 이곳에서 우물을 파서 식수를 해결했다. 일행이 이곳에서 두번째 우물을 파자 마침내 식수가 고였다. 일행은 다행히 고인물로 목을 추겨 전 대원이 목숨을 유지했다. 이곳은 떠나온 투박 (Tubac)에서 360 마일 지점이었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차가웠다. 그리고 회색빛 구름만이 떠돌았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45마일 지점에는 가르세 신부가 산제로니모 (San Geronimo) 산근처 원주민에게 열심히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디 안자 사령관은 뒤미쳐 오는 후속분대를 위해 모닥불의 재를 완전히 끄지않고 온기를 남겨두었다. 해가 지면 사막의 겨울은 몹시 춥기때문이다.
날이 밝자 폰트 신부는 가축들이 물을 마시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일행은 또다시 지루한 행군에 들어섰다. 디 안자의 제1진과 뒤따르는 제2진은 각각 18마일을 전진했다. 모래투성이 길은 가축이나 대원 모두 걷기에 불편했다. 주위의 풍경은 어제와 대동소이하게 단조로웠다. 다만 햇살이 어제보다 조금 따사로울뿐이었다. 12시 조금 지나 일행은 포조 디 아레그리아 (Pozo de Aregria)라고 부르는 우물을 지났다. 그리고 일행은 졸졸대며 흐르는 냇물에 몸을 씻고 묵은 옷을 빨래했다.디 안자를 뒤따르는 후속 분대는 제1진이 지나간 길을 확인하고 뒤따랐다.
춥고 배고파도 갈 길은 끝이 없다
이날 일행은 21마일을 전진하고 오후 5시30분경 모래뻘이 갈라졌으나 약간 물기가 있는 모래뻘에 야영장을 꾸렸다. 종군사제 폰트 신부는 이곳을 물기가 전혀없는 건조한 계곡인 바란카 세카 (Barranca Seca)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주위에는 의외로 가시나무가 많았다. 해지기 직전이라 다가올 추위에 대비해 가시나무를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콩요리로 저녁을 때웠다. 가축에게는 산타오라야에서 싣고온 여물을 먹였다. 밤은 길고 무척 추웠다. 디 안자 사령관도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날이 밝자 디 안자는 지난 11월 제1차 정찰에 참가한 병사들이 포함된 정찰대를 새로 꾸려 산타로사로 보내 그곳의 물사정을 사전에 파악하기로 했다. 대원들은 간단한 아침식사 후 가축들에게는 여물과 물을 넉넉하게 먹고 마시도록 했다. 길은 부드러운 모래와 굳은 땅이 계속되었다. 멀리 옛부터 장마에 떠밀려온 온갖 나무줄기와 나뭇가지들이 세월이 가면서 유령처럼 변해 딩굴고 있었다. 햇살이 나면서 추위는 조금 가시었다. 일행은 멀리 지평선을 향해 짐승처럼 꾸물대며 앞으로 전진했다. 제1진이 지나온 길을 제2진, 제3진이 제1진이 지나간 길을 확인한 후 뒤따랐다. 다만 가축을 몰고 오는 제4진만은 2내지 3일간 물을 전혀 마시지도 못하고 북쪽을 향해 달릴 것이다. 어제만해도 흩어져 하늘을 떠돌던 구름이 점차 두터워졌다. 구름이 햇살을 가리자 가축들의 갈증은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디 안자와 폰트 신부는 좀체 말을 나누지않고 나란히 말을 몰았다. 11일 디안자 사령관은 30마일, 폰트 신부는 42마일을 걸었다고 각기 다르게 기록했다. 해질 무렵 일행은 산타로사 디 라스라하스 (Santa Rosa de las Lajas)에 도착했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