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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콜로라도 강을 건너 산가브리엘을 향해-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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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배고파도 갈 길은 끝이 없다 
산타로사에 도착하자 이곳에서는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음을 알았다. 병사와 대원들은 즉시 우물파기 작업에 달려들었다. 다행이 탐험대의 수호신인 과다루페의 성모님의 은총인지 식수가 고였다. 대원들은 고인 식수로 위급함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물은 대원들에게 턱없이 모자랐다.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바구니에 물을 담아 급한 대로 가축에게 돌렸다. 병사와 대원들은 계속해서 6개의 우물을 추가로 넓고 깊게 팠다. 이렇게 판 우물에 점차 물이 고였다. 해가 지자 산타로사의 겨울은 다시 추워졌다. 그러나 병사들은 휘영청 밝은 달빛에 의지해 열심히 우물을 팠다. 또 이같은 노력으로 가축들은 넉넉하게 물을 마시고 또 후속부대는 물걱정을 면했다.
13일 아침은 찬바람이 심했다. 다행히 빗줄기는 없었으나 암반투성이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눈발은 차가웠다. 어찌나 바람이 차던지 살깟을 뜯는 것같은 추위였다. 일행은 아침 9시경 맞바람을 뚫고 7시간동안 21마일을 주파한 후 산세바스티안 (San Sebastian)에 도착했다. 모래땅이어서인지 가축들은 힘들게 발을 옮겼다. 여인네와 어린이조차 담요나 간단한 짐을 들고 걸었다. 그러나 길은 하얀 밀가루같은 잔모래였다. 또한 주위는 온통 갈대밭뿐이고 목초는 눈에 띄지않았다. 일행은 근처에 흔한 머스퀴트 나무가지로 화목을 준비했다. 마침 일행은 체구가 작고 마른 체형의 원주민 20내지 30여명이 지켜보고 있음을 알았다. 마침 몇 명의 원주민이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들은 실 한올 걸치지 않은 완전나체였다.

나무 몽둥이 던져 사냥하는 원주민들
대신 이들은 조잡한 모양의 활과 화살을 메고있었다. 또한 이들은 손가락 3개 두께에 2피트 길이의 몽둥이를 들고있었다. 이들은 이 몽둥이를 던져 달아나는 토기의 다리를 부려뜨려 사냥한다고했다. 이들은 또한 손수 짠 그물을 던져 짐승을 사냥했다. 이들의 언어는 유마 부족과는 완연히 달랐다. 차라리 코하트 부족과 유사한 듯 했다. 또한 이들의 주식은 토끼고기나 용설란 그리고 머스퀴토나 연한 갈대도 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내내 배고파하여 대원들은 지금까지 보아온 원주민 중 가장 불쌍한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추위는 오후 5시경이 되자 다시 계속되고 또 눈비도 내렸다.

1775년 12월 14일 목요일부터 12월17일 일요일까지 (호르..출발 77일부터 80일)
밤새 추위를 버티지 못한 가축들이 죽어갔다. 일어나보니 두 마리는 이미 죽었다. 그러나 5마리는 거동조차 불가능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이미 죽은 가축을 도축하여 염장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염장한 고기에서는 냄새가 역했고 고기맛도 별로였다. 대원들은 일부 고기를 마른고기로 만들어 보관했다. 아침내내 대원들은 계속될 행군 준비로 분주했다. 20여 마리의 노새에게 산타오라야에서 싣고 온 여물을 넉넉히 먹였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어린아이조차 노새에 태우지않고 걸었다. 지난 주일내내 찌푸렸던 하늘은 오늘은 투명하고 맑았다. 오후 1시 30분 일행은 산세바스티안을 떠나 서-북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눈앞을 가린 거친 암반 위에는 쌓인 눈들이 햇빛에 반짝였다. 반짝이는 눈덮힌 암반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멀어지고 또 가차워지기를 반복했다. 근 20여마일을 일행은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모닥불 땔감을 구하기좋고 가축들의 먹이가 널려있는 초목 근방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다음날 19일 아침이 밝았다. 일행은 야영장을 출발하여 부지런히 18마일을 전진한 후 오늘의 보레고 (Borrego) 샘이 있는 산 그레고리오 (San Gregorio)에 도착했다. 오랜 장거리 여행에 탈진한 말 세 마리와 숫소 4마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이곳 물은 그런대로 마실만 했다. 그러나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가축들 반이 물을 마시자 이미 물은 동이 났다. 일행은 밤새 7개의 우물을 팠다.

추위에 죽어가는 말, 소 가축들
그날 밤 다시 기온은 급강하했다. 추위를 견디지못한 말 세마리와 소 다섯마리가 세상을 떴다. 전대원이 밤을 새며 가축의 피해를 줄이려 모닥불을 피웠다. 이같은 소동 속에 신경이 예민해진 가축들이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뒤이어 병사들이 달아난 가축을 추격했다. 추격에 나선 병사들은 날이 밝아도 돌아오지 않자 다시 병사들이 돌아오지않는 병사들을 찾아나섰다. 이처럼 시간은 흘렀다. 그러나 바닥난 식수는 차지 않았다. 일행은 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북서쪽을 바라보고 산타카타리나를 향해 출발했다. 12마일을 전진한 후 선인장이 즐비한 벌판에 이르자 선인장 열매를 채취하던 여인네들이 조잡한 활과 화살, 바구니를 내팽개친 채 달아났다.  다음 날 목요일 오후 일행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느즈막하게 기상했다. 이때 살아있다고 믿기힘들만치 처참한 모습의 원주민 4명이 비칠대며 야영장 주변을 기웃댔다. 디안자는 이들은 분명 전날 여인네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바구니나 활, 그리고 화살을 챙기러 왔다고 생각했다. 디 안자는 배고파 보이는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잠시후 더 많은 원주민들이 비칠대며 야영장 주변에 모여들었다. 대원들이 원주민들을 공손하게 대하자 원주민들도 대원들을 호감으로 대했다. 달아난 가축을 찾아나섰던 병사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디 안자는 다시 병사 2명을 추가로 보내 가축을 수색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그러나 대원들은 산세바스티안의 습지대 근처를 지나다 가축 근 50여마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리자발’ 상사는 22일 금요일 7명의 병사를 데리고 잃어버린 가축 중에서 다수를 수습한 후 돌아왔다.

1775년 12월23일 토요일부터 12월 26일 화요일까지 (호르..출발 86일부터 89일까지)
디  안자는 더 이상 달아난 가축을 수습할 수 없자 이를 포기한 채 다시 출발했다. 일행은 구름이 가득찬 하늘을 마주보며 계곡을 타고 북서쪽으로 전진했다. 가는 눈비가 길을 적셨다. 일행은 약 1마일 반을 지나 산타카타리나의 내가 흐르는 곳에 야영장을 차렸다. 야영장 주변의 야트막한 고지대 바위틈에 원주민 몇 명이 머리를 내민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고 여윈 모습이 꼭 입을 다문 숫사슴 모양이었다. 야영장을 차리는 동안 디 안자는 원주민 마을을 찾았다. 원주민들은 마을을 찾은 디 안자를 환영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원주민 2명이 디 안자에게 용설란 열매를 건넸다. 마침 용설란 열매 수확기여서인지 근방에 원주민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이때 과감한 여인네 한 명이 야영장을 찾아 유리구슬을 청했다.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날씨는 음산하고 차가웠다. 아침 9시 30분, 일행은 다시 모래투성이 계곡을 따라 힘들게 걸었다. 주위는 온통 대원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않는 덤불과 잡목뿐이었다. 높다란 산등성이 바위사이에 머리만 내밀었던 원주민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그래도 용감한 여인네 한 명은 유리구슬을 달라고 계속 뒤따랐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뒤따르던 원주민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9마일 가량 전진했을 무렵 한 여성대원이 분만의 고통을 호소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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