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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콜로라도 강을 건너 산가브리엘을 향해-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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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네 분만으로 전원 휴식
일행은 마땅한 장소를 찾아 야영장을 차리고 여인네의 분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허약한 가축에게 휴식을 주었다. 이날도 탈진한 가축 5마리가 희생되었다. 분만한 여인네가 대원들과 동행하기에는 건강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콜로라도 강변을 지날 때 여인네의 분만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디 안자 사령관은 대원들에게 브랜디 위스키를 풀었다. 이러한 디 안자의 처사에 대해 폰트 종군사제는 아직도 불만이었다. 여인네의 분만으로 대원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이번 경사에는 디 안자는 브랜디를 풀지 않았다.
이곳의 식수도 그리 좋은 편은 못되었다. 성탄 전날, 일행은 평소대로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나 폰트 사제는 심한 몸살로 성탄 만찬에 참석하지 못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탐험대의 회계관을 보내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연락병을 보내려하니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폰트 신부는 “갑자기 산가브리엘 선교원을 꺼내느냐”고 의아해했다 .폰트 신부는 산가브리엘 선교원이 점차 가까이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디 안자 사령관은 벌써 산카를로스를 지날 때부터 산가브리엘 선교원에 연락병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성탄절 다음날인 26일 화요일 새벽은 차가웠다. 그래도 아침 햇살은 벌써 계절이 바뀜을 알리듯 많이 누그러졌다. 며칠간 휴식으로 산모도 태어난 아기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되었다. 노새 등에 짐을 올리고 대원들이 천막을 걷는 사이 아침 9시가 되자 전 대원은 다시 발길을 걸었다. 목적지 산가브리엘 선교원이 가차웠다는 것을 아는 대원들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발길을 옮겼다. 일행은 밤새 짐승들이 낸 발자국을 따라 북서쪽으로 향했다. 얼마후 햇살이 사라지더니 이슬비가 내렸다. 일행은 계곡을 따라 작은 언덕에 이르고 이어 너른 들판으로 빠져들었다.

악마의 길을 빠져나오자 도토리나무가
그러자 부슬비는 갑자기 눈발로 변하더니 이어 함박눈이 되었다. 그리고 근처 들판을 가렸던 초목은 얼마후 도토리 나무가 무성하고 소나무가 빽빽한 야산이 되었다. 디 안자 사령관과 종군사제 폰트 신부는 아직도 별 말을 나누지않으며 나란히 말을 몰았다. 
일행은 원주민이 급히 자리를 옮긴 듯 아직도 타다남은 재에 온기가 남아있는 부락을 지났다. 원주민이 방금 달아난 듯 발자욱도 선명했다. 4시간 동안 일행은 9마일을 지났다. 오후 2시 넘어 일행은 산카를로스 패스 (San Carlos Pass)에 가까이 이르러 이슬비가 내리는 중에 근처에 야영장을 차렸다.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4분 가량 지축을 흔드는 지진이 났다.
1775년 12월27일 수요일부터 31일 일요일까지 (호르..출발 90일부터 94일까지)
디 안자 사령관은 날랜 병사 3명을 선발하여 한발 앞서 산가브리엘은 물론 산루이스 오비스포 (San Luis Obispo)와 산안토니오 (San Antonio), 몬트레이 (Montery)수비대 사령관에게 연락병을 급파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이 서신에서 “장기간 여행으로 가축들의 손실이 많고 탈진상태라 방치할 수 없어  예정대로 직접 몬트레이 수비대로 갈 수 없는 상태이다”라고 쓰고 “제1차 탐험시 익숙해진 노선을 따라 행진할 예정이니 몬트레이 수비대장 돈 페르난도 리베라 y 몬카다 (Don Fernando Rivera y Monca: *c 1725- 1781 7.18 사망, 그는 몬트레이 수비대장을 거쳐 1774년부터 1777년까지 제3대 캘리포니아 총독 역임) 수비대장께서는 적절한 조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디 안자는 “새로운 정착지 건립에 수비대장의 협조를 당부하고 샌프란시스코 강 연안 탐험에 필요한 선박과 탐험대를 안내할 배를 부릴 선장도 준비해주기 바란다”라고 했다. 연락병이 출발한 후 오전 9시 45분 디 안자 사령관과 전 대원은 산카를로스를 출발한 후 북 서쪽을 향해 전진했다. 오솔길은 의외로 촉촉해서 걷기 편했다. 주위는 길게 자란 나무나 덤불, 가축의 먹이인 초목이 무성했다. 그래도 앞서 달리는 산줄기에는 하얀 눈이 빼곡하게 덮였다. 추위에 혼이 났던 대원들은 눈을 보자 겁을 먹었다. 공포에 질린 여인네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이러한 대원들에게 디 안자 사령관은 “이제 해안가가 가차우니 더 이상 추위는 없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18마일을 걷고 또 걸었다. 오후 2시 30분경 대원들은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냇가인 ”왕자의 계곡’에 야영장을 차렸다. 그날밤, 산모가 산후통으로 몸져 누웠다. 여인네가 회복할 때까지 전 대원은 하루 휴식에 들어갔다. 그래도 걸음이 느린 가축은 계획대로 아침에 출발시켰다. 29일 금요일 아침, 일행은 보우티스타 (Bautista)계곡을 출발하여 산파트리치오 (San Patricio)를 따라 행진을 계속했다. 추위는 가시고 주위에 초목이 무성하자 대원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산호세프 (San Josef) 계곡을 지나 일행은 산하신토 (San Jacinto) )강에 도착했다. 이날 대원들은 7시간 동안 18마일을 주파하는 긴 하루를 보냈다. 일행은 비교적 평안한 날씨 덕분에 걷고 건너면서도 고통을 몰랐다. 다가오는 탐험대를 보고 원주민 한 무리가 달아났다. 원주민 마을을 지나 일행은 땅거미가 질 무렵 무성한 초목이 넓게 펼쳐진 비옥해보이는 마을을 지났다. 언제부터인가 대원들 후미에는 말없이 따라오는 원주민들이 보였다. 이들은 날이 어둡자 어느새 사라졌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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