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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콜로라도 강을 건너 산가브리엘을 향해-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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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5년 12월27일 수요일부터 31일 일요일까지 (호르..출발 90일부터 94일까지)
12월 30일 토요일, 날씨는 의외로 냉기가 없이 따사했다. 디 안자와 일행은 눈 덮인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며 이곳은 무척 추우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추위는 심하지 않았다. 탈진과 추위로 생사 갈림길을 오가는 가축들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산 카를로스를 지나 일행은 수정처럼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천상의 계곡’을 지나면 이제 대원들은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를 지나야했다. 디 안자와 대원들은 제1차 탐험 때처럼 수천 마리의 하얀 거위가 눈처럼 호수를 덮던 산 안토니오(San Antonio) 호수와 산등성이 사이에 야영장을 마련했다.12월 31일, 이제 1775년도 하루뿐이다. 송년 미사 후 일행은 러셀(Russel) 산을 우회한 후 3마일가량 전진하기 전 서북서쪽을 향해 21마일가량 전진했다. 그리고 산타 아나(Santa Ana) 제방에 야영장을 차렸다. 주위는 온통 촉촉한 대지에 초목만이 무성했고 근방 야트막한 등성이에는 로즈메리나 식용 식물, 해바라기, 포도나무가 무성했다. 또한 산타 아나 강물은 넓고 깊게 흘렀다. 해안가에는 부서지는 파도가 주위에 가득했다. 강폭은 대략 5~4야드, 넓은 곳은 6야드 정도였다. 물살이 거칠어서인지 어디에도 여울목은 보이지 않았다. 디 안자는 이처럼 맑은 물은 아마도 시에라 네바다에서 흘러왔으리라고 생각했다. 물줄기는 북동쪽을 지나 남서쪽 산등성이를 돌아 흘러갔다. 저지대 제방에는 느릅나무가 사열받는 병사들처럼 줄지어 늘어섰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는 잘 자란 소나무가 다른 나무를 식별할 수 없게 가렸다. 머지않아 식수와 가축들 먹이 구하기가 힘들 것 같아 일행은 부지런히 화목과 여물을 준비했다.

1776년 1월 1일 월요일부터 1월 4일 목요일까지 (호르카시스타 95일부터 98일까지)
새해 첫날인 1776년 1월 1일, 대망의 신년이 성큼 다가왔다. 산타아나의 거센 물살을 건너야 할 가축들은 거친 물살을 보고 벌써 흥분상태였다. 디 안자 대원들도 긴장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제1차 탐험 때 준비했던 임시 다리를 어렵사리 찾아냈다. 그리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수한 후 가축들을 먼저 출발시켰다. 가축들이 임시 다리를 건너는 작업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점심때까지 계속되었다.임시 보수한 다리는 무거운 화물을 감당하기 어려워 가축이 다리를 건널 때는 소량의 짐만 실었다. 황소와 말은 사전 충분한 조처로 거센 물살을 무사히 건넜다. 황소와 말은 3~4차례에 걸쳐 물살을 건넜다. 디 안자와 대원들은 건너편 제방에 미리 모닥불을 피워 찬물에 젖은 대원과 가축에게 온기를 전했다.
대원들이 모두 강을 건넜을 무렵, 지난 해 산 가브리엘 선교원과 몬트레이 수비대로 출발했던 연락병 3명이 건강한 말 17마리를 몰고 도착했다. 연락병들은 지난 해 11월 초 산디에이고의 일부 이교도들이 새로 개종한 일부 신자들과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다. 폭도들은 사제 한 명과 산디에이고 선교원의 시종 2명을 살해한 후 선교원 호위대에게도 많은 부상자를 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같은 폭동은 산 가브리엘 선교원까지 번져 선교원 내의 몇몇 건물도 불탔다고 했다. 산 가브리엘과 인근 원주민도 폭동에 가세한 것 같다고 전했다. 연락병들은 또한 이 같은 폭동으로 몬트레이 수비대 사령관 ‘몬카다’에게는 디 안자 사령관의 사신은 아예 전달할 수 없었다고 보고했다.
1월 2일 화요일 아침, 디 안자 사령관은 제2차 탐험대는 이틀 안에 산 가브리엘 선교원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연락병을 다시 산 가브리엘 선교원에 급파했다. 뒤이어 아침 8시 30분 전 대원은 산타아나를 출발했다. 산 가브리엘로 가는 길은 평탄했다. 목적지 산 가브리엘 선교원이 눈앞에 다가서자 전 대원의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길 주변은 온통 가축들의 먹이인 푸른 초목, 또 너르고 평평한 들판에는 폰트 사제가 특히 즐기는 야생 양상추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 대원을 따라 참새보다 조금 큰 새들은 일행을 뒤따르며 소리 냈다. 길을 가는 내내 부슬비가 간간이 뿌렸다. 기온이 풀렸다 해도 부슬비는 일행의 뼛속까지 적시는 듯했다.
6시간 동안 근 18마일을 걸었다. 그리고 디 안자 사령관의 제1차 탐험 때 머물렀던 아로요 디 라스 오소스(Arroyo de las Osos: 곰들의 계곡)에 야영장을 차렸다. 눈을 머금은 부슬비는 천막을 치는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제1차 탐험 때 디 안자 사령관은 근처 굵은 나무줄기에 라틴어로 ‘구원자 예수’라는 IHs 알파벳을 새겼었다. 이번 2차 탐험 시 폰트 신부는 그 위에 ‘1776년 산프란시스코 탐험대’라고 추가로 칼로 새겼다. 모닥불 덕분에 온기를 즐기는 대원들은 매캐한 연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닥불을 즐겼다.
짙은 안개와 함께 날이 밝았다. 아침 8시 45분, 디 안자 사령관과 폰트 사제가 나란히 앞장서자 이제는 활기를 되찾은 대원들이 서둘러 뒤따랐다. 그 뒤를 아직도 탈진 상태의 가축들이 뒤따랐다. 지나는 길 주변은 전날과 대동소이했다. 대략 15마일을 전진했다. 산가브리엘 선교원까지 6마일 남은 지점인 맑은 물이 흐르는 냇가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다음 날 4일 아침, 일행은 선교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탐험대가 선교원 주위에 모습을 보이자 인근 주민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곧이어 선교원의 종소리가 낭랑하게 울리고 탐험대 환영차 몬트레이 수비대에서 내려온 몬카다 사령관과 선교원 사제가 영접차 선교원을 나서자 병사들의 축포 소리는 하늘을 울렸다. 호르카시스타 요새를 떠난 지 98일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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