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일행은 산타바아바라 해협을 따라 약초 밭에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조개껍질을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는 원주민
바다를 끼고 사는 원주민들은 콜로라도 강 유역의 원주민들과 둥근 바다조개로 물품을 거래했다. 이들은 바다조개를 다발로 묶어 목에 걸거나 머리털에 매달았다. 그리고 필요시 필요한 만큼 조개껍질을 지불했다.
완전 나체로 생활하는 원주민 남정네들은 다발로 엮은 조개껍질을 허리에 차거나 아니면 작은 나뭇가지나 새의 깃털과 조개껍질 다발을 함께 묶어 고정시켰다. 여인네들은 사슴가죽을 허리 아래까지 두르고 물개가죽은 등 뒤에 둘렀다.
폰트 신부는 “나는 이곳 원주민 여인네를 거의 보지 못했다. 남정네가 초옥의 마른 풀로 엮은 거적대기 문을 지켰다.”고기록했다
이곳 원주민 마을은 해협을 따라 비교적 평평한 대지에 마련되었다. 마을 주변은 얕으막한 담장으로 둘러싸였다. 이들은 또한 둥근 공을 굽은 나무로 내려치는 경기를 즐겼다. 그리고 이들은 판자나 나무 기둥 위로 경계를 이룬 일정한 토지를 매장지로 사용했다. 이곳에는 붉고 검은 표시를 내걸어 멀리서도 매장지를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그곳에는 사망자가 생전 사용하던 활이나 화살, 바구니, 가지고 놀던 공이나 조개껍질을 매달아 놓았다. 이곳은 특히 해변에 떠밀려온 죽은 고래뼈로 위치를 표시했다.
이들은 모두 고기잡이에 능하고 잡은 물고기를 상용했다. 가끔 나무 씨앗이나 열매를 먹기도 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비참할 정도로 배고픔에 시달린다고 했다. 사실 이들은 영악하지만 교활하지는 않았다. 특히 이들은 매사 쉽사리 터득했다. 일행과 해변가 원주민들은 통역 없이도 몸짓으로 쉽게 의사를 터득했다. 그러나 이들도 여타 원주민들처럼 필요한 것을 슬쩍 숨기는 버릇이 있었다.
폰트 신부는 “평화스럽고 유순해 보이는 원주민들이지만 쉽사리 하느님 품을 찾을 부족은 아니다.”라고 보았다.
2월 25일 일요일부터 2월 27일 화요일까지 (호르카…출발 150일부터 152일까지)
일요 미사 후 일행은 해변을 따라 서쪽을 향해 계속 전진했다. 일행은 얼마 전 선교원을 세우려다 중단한 산 부에나 벤튜라(San Buena Ventura) 마을을 지났다. 선교원을 세우려 했으나 보급품 수송이 여의치 않자 자연 선교원 신축은 중단되었다. 정오경 일행은 라 라구나(La Laguna) 마을에 도착한 후 마을 원주민들과 유리구슬과 물고기와 바구니를 교환했다.
폰트(Font) 종군 사제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물고기를 싣고 배 한 척이 해변으로 다가왔다. 이어 10명 내지 12명의 원주민들이 배를 어깨에 둘러메고 아마도 추장이거나 아니면 선주의 집으로 갔다.”라고 기록했다.
이곳 원주민들은 물고기 잡이에 능했다. 갈대로 만든 원통형 물고기 바구니를 이용하거나 조개껍질로 낚시를 만들고 삼베를 꼬아 작은 그물도 만들었다.
2월 25일 일행은 근 27마일을 전진했다. 그리고 한밤중 일행은 메스칼티탄(Mescaltitan) 마을 근방에 야영장을 차렸다. 두터운 바다 안개에 일행의 옷은 부슬비를 맞은 듯 축축해졌다.
26일 수요일 일행은 8시 30분경 다시 길을 나섰다. 일행은 메스칼티탄을 지나 페드로 산 파블로(Pedro y San Pablo) 마을에서 추가로 바구니를 더 구입했다. 그리고 정교하게 돌을 다듬어 만든 물컵과 나무 대접을 구입했다. 이들이 만든 돌 컵과 나무 대접은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워 디 안자나 폰트 사제조차 놀랄 정도였다.
뒤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그림자처럼 따르다
짙은 안개가 가득 찬 하늘은 때때로 옅은 안개가 덮었다. 안개는 일행의 좋은 동반자라도 된 듯 해변가를 지리하게 지나는 일행을 뒤따랐다. 일행은 해변에 바다에서 생긴 끈끈한 검은 타르가 해변의 작은 자갈에 달라붙거나 공처럼 뭉쳐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끈끈한 타르는 선박의 누수를 막는 데 필요한 귀한 재료이다.
일행은 소나무가 무성한 언덕을 넘고 다시 작은 내를 건넜다. 정오 무렵 짙은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해변을 지났다. 안개는 너무나 짙어 뒤따르는 일행의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후 늦으막한 시간, 일행은 바다가 오른편에서 보이는 곳에 야영장을 차렸다. 란체리아 누에바(Rancheria Nueva)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27일 목요일 일행은 높다란 산등성이에 난 길을 따라 오르고 또 내려가면서 정오까지 엘 가비오타(El Gaviota)와 가까운 해변으로 내려갔다. 이날 오후 전 대원이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정어리를 실은 배 한 척이 다가왔다. 이날도 근 30여 마일을 전진하면서 5개의 원주민 마을을 지났다. 그러나 그중 2개 마을은 원주민이 모두 떠난 유령 마을이었다. 이날 엘 코호(El Cojo) 마을 근방에서 야영했다.
2월 28일 수요일부터 3월 1일 금요일까지 (호르카…출발 153일부터 155일까지)
일행은 아침 8시 엘 코호를 향해 서쪽으로 향했다. 차가운 맞바람에 어린이며 부녀자들이 추위에 몸을 떨었다. 해협의 맨 가장자리인 라 컨셉션(La Concepcion)에 이르러 북-북서로 향하자 거친 바닷바람이 일행을 맞았다. 이같은 추위 속에 일행은 묵묵히 앞으로 전진했다.
일행은 포톨라 지사가 라 에스파다(La Espada)와 로스 페데나레스(Los Pedenales)라고 부른 자그마한 마을 두 개를 지났다. 일행은 제법 높다란 모래둔덕을 내려가 해변에 이르렀다. 일행이 다시 산타 이네즈(Santa Ynez) 오른편에 있는 라 컨셉션 마을에 있는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자 너른 대지는 지나온 곳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곳에는 다양한 들꽃과 질 좋은 목초와 향기로운 약초들의 향기가 가득했다. 일행은 다시 평탄한 해변을 지나 오늘의 산타 이네즈 강인 산타 로사(Santa Rosa) 강가에서 야영했다. 그러나 산타 로사 강물은 낮은 조수 때를 제외하고는 건널 수가 없었다. 36마일을 8시간 만에 주파하는 강행군 끝에 일행은 오후 4시경 산타 로사에 도착했다. 그러나 조수가 몰려든 강물은 도저히 건널 수가 없었다. 일행은 강둑에서 야영을 하며 간신히 구한 화목으로 추위를 달랬다. 그날 밤 바닷바람은 엄청 매서웠다.
사방이 온통 희뿌연 안개 속에서 아침은 밝았다. 그러나 짙은 안개는 여전했다. 정오 무렵까지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조수가 낮아지기를 기다려 일행은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리고 오후 들어 9마일을 전진한 후 라구나 그라시오사(Laguna Graciosa)에서 야영했다.
추장 목에 혹이 있어 ‘혹’의 마을’로 불리다
3월 1일 금요일 추위를 동반한 축축한 바다 안개는 해변을 지나 내륙으로 빠졌다. 아침 일찍 일행은 북동쪽을 바라보고 내륙으로 들어갔다. 모래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면서 9마일을 지났다.
이곳부터 길은 몬트레이 근방 카아멜 (Carmel )선교원으로 통한다. 북쪽으로 향한 언덕에 오른 후 근 10시간을 전진한 후 일행은 란체리아 델 부촌 (Rancheria del Buchon)에 야영장을 차렸다. 한밤중이었다. 다행스레 인근에는 지천으로 화목이 넉넉하고 물은 맛날 정도로 맑았다. 일찌기 포톨라 총독은 이곳 추장의 목에 커다란 혹을 달고있다하여 큰 혹인 엘 부천 (El Buchon) 이라고 불렀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