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소노라 출발 164일만에 몬트레이 수비대에 도착하다-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수비대와 선교원 터를 잡다
1776년 3월 11일 월요일 (호르… 출발 165일째)
11일 월요일 오후 4시 디 안자 사령관과 세라 신부와 폰트 신부 그리고 탐험대 주치의사와 탐험대 검사관 일행 5명과 일부 병사는 몬트레이 수비대를 출발하여 남서쪽을 향해 카아멜 선교원을 향해 출발했다. 4.8마일 거리의 산 카를로스 델 카아멜(San Carlos del Carmelos) 선교원에 5시경 도착했다. 배에 실려 먼 바다를 건너온 선교원의 종이 낭랑하게 울리고 모르기나(Moguia) 신부가 정문에 나와 일행을 맞았다. 또한 선교원의 7사제가 도열하여 디 안자 사령관 일행을 환영했다. 카아멜 선교원은 1601년 세바스티안 비즈카이노(Sebastian Vizcaino) 선장이 캘리포니아 연안을 탐험할 때 동승했던 카아멜라이트(Carmelite) 두 사제가 강과 내륙의 이름을 카아멜이라고 부르면서 유래되었다.
이 선교원은 카아멜 강에 인접한 바다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강은 산타 루시아 산과 사이푸러스 사이의 내륙으로 흘러들었다. 일대의 토양은 기름지고 날씨는 때로는 차가우나 지내기에는 사시사철 좋은 날씨였다. 그러나 해안 지대는 언제나 두꺼운 안개가 문제였다. 선교원은 목재와 갈대를 엮은 지붕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외벽은 페인트를 칠해 그런대로 외양을 갖추었다. 6개의 방을 가진 두 번째 건물은 흙벽돌로 지었다. 이 중 3개의 거실은 사제들의 방이었다. 각 거실에는 별도의 부엌과 화덕을 갖추었다. 선교원 주변은 푸르른 초목과 흐드러진 만개한 꽃들이 한창이었다. 높다란 산도 선교원에서는 지척으로 보였다.
선교원에는 하느님 품을 찾아 영세한 원주민을 포함하여 아직 영세를 받지 않은 원주민까지 대략 400여 명이었다. 대부분 원주민은 고기잡이로 생활했다. 그물로 고기를 잡기보다는 바다 속에 잠수하여 연어나 정어리를 잡았다. 디 안자와 폰트 신부는 매끼 맛있는 연어를 즐겼다. 특히 디 안자 사령관은 돌아갈 때 가져가려고 부지런히 연어를 건조했다.
3월 12일 화요일부터 3월 17일 일요일까지 (호르… 출발 166일부터 171일까지)
12일 일요일 아침은 이슬 같은 안개가 자욱했다. 얼마 후 정말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디 안자 사령관과 폰트 사제는 함께 머물면서 그간 두 사람 간에 흐르던 어색한 간격이 어느새 허물어지면서 마음을 트고 친교를 맺는 사이가 되었다.
마침내 디 안자 사령관은 숙제처럼 남아 있는 오늘의 샌프란시스코 내포(만) 일대 탐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카아멜 선교원에는 4명의 사제가 상주했다. 이들은 특히 멀리 소노라에서 찾아온 전설 속의 탐험가 디 안자 사령관의 방문을 반기었다. 이들은 근 2년 전부터 디 안자 사령관이 소노라를 출발하여 태평양 연안의 너른 내포 일대를 탐험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있었다. 특히 세라 신부는 마침내 탐험이 실현되어 정착촌이 건립된다면 이를 극구 반대하는 리베라 몬카다 지사와의 불화를 걱정했다. 그러나 디 안자 사령관은 폰트 사제에게 자신은 리베라 몬카다 알타 캘리포니아 지사보다 한발 앞서 정착 희망자와 함께 태평양 연안에 가겠다고 요청하는 서신을 보여주었다. 디 안자는 리베라 몬카다 지사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태평양 연안 내포 일대를 탐험하다 마땅한 장소를 확인하면 몬트레이로 돌아와 귀하의 허락하에 그곳에 정착촌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디 안자는 서신에서 “뉴 스페인 총독 부카렐리는 내포 일대에 영구 정착촌을 세우고 그곳에 항구를 건설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몬트레이에 도착한 정착 희망자도 정착촌 건설을 기피한다면 선교원도 사라지고 당장 멕시코로 돌아갈 것을 리베라 몬카다 지사를 압박했다.
카아멜 선교원에 머문 지 3일이 지났지만 디 안자 사령관은 미열과 불면, 그리고 사타구니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했다. 폰트 신부도 구강 종양에 의한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날씨는 계속 보슬비가 내리고 햇살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이런 와중에 디 안자 사령관은 건실한 병사 8명에게 힘센 말을 골라 타고 산디에이고에 머무는 리베라 몬카다 지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하도록 급파했다. 폰트 사제는 양상추를 즐겨 먹어 구강 통증이 웬만큼 가라앉자 근 1주 만에 몬트레이 수비대를 방문한 후 산디에이고로 떠나는 병사들을 강복했다. 디 안자와 폰트 신부가 자리를 비운 1주일 사이 몬트레이에 머무는 정착 희망자들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우선 이들은 식수가 모자라고 제반 여건이 지내기에 불편하고 협소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탁용 비누도 모자란다고 했다. 이러한 정착 희망자의 불평을 해결하기에는 모라가 중위는 역부족이었다. 폰트 사제는 급히 카아멜 선교원으로 말을 달려 아직도 거동이 불편한 디 안자 사령관에게 이를 세세히 보고했다.
3월 18일 월요일부터 3월 21일 목요일까지 (호르… 출발 172일부터 175일까지)
디 안자 사령관과 폰트 사제의 몸은 점차 회복되었다. 화요일 19일부터 안개도 오랜만에 걷히고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디 안자 사령관은 그간 미루었던 ‘내포(베이) 지역’ 탐험을 오는 금요일인 3월 22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탐험에 사제 1명도 동행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세라 신부는 동의하지 않았다. ‘내포 지역’ 정착을 원하지 않는 리베라 몬카다 지사와 불화를 일으켜 선교원 증설에 혹시나 영향이 있을까 해서였다. 사실 세라 신부가 뉴 스페인 방문 시 알타캘리포니아 지사에 리베라 몬카다 대신 페이즈(Fage) 지사를 연임시켜 달라고 부카렐리 총독에게 건의한 사실이 알려져 세라 신부와 리베라 사이는 불편한 관계였다.
3월 22일 금요일부터 3월 25일 월요일까지 (호르…출발 176일부터 179일까지)
탐험대 전담 의사의 권유대로 디 안자 사령관은 훈련 삼아 ‘내포(베이 지역)’ 탐험에 나서기로 했다. 병사들이 디 안자의 ‘말타기와 말에서 내리기’를 도와주었다. 디 안자 사령관은 몬트레이에서 ‘샌프란시스코 내포(베이 지역)’까지 100여 마일을 무리 없이 달렸다. 일행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몬트레이 수비대가 자리 잡은 소나무 숲인 푼타 디 피노스(Punta de Pinos)까지 약 2마일을 달리고 다시 해안을 따라 아노 누에보(Ano Nuevo)까지 6마일을 달렸다.
탐험대는 무려 20여 명에 달했다. 디 안자 사령관과 폰트 종군 사제 외에 상병과 10명의 병사와 시종 6명이 동행했다. 10명의 병사 중 6명은 투박 수비대 출신이다. 로블스(Robles) 상병과 2명의 병사는 몬트레이 수비대 출신으로 이들은 일찍이 ‘베이 지역’ 탐험한 적이 있어 이번 탐험의 안내를 맡았다. 모라가 중위까지 탐험에 나서는 바람에 몬트레이 수비대에 잔류한 탐험대는 탐험대 회계감사관이 대신 지휘하기로 했다. 탐험대는 20일부터 양식 등 탐험대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출발 전야인 21일 디 안자 사령관은 차가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은 총총하고 수비대는 깊은 정적에 잠들었다. 때때로 깊은 밤안개를 지나 파도 소리와 함께 물개 울음소리만 깊은 정적을 깨트렸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