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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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수비대와 선교원 터를 잡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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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6년 4월 1일 월요일부터 4월 2일 화요일까지 (호르…출발 186일부터 187일까지)
4월 1일 아침 7시, 일행은 오른편에 험준한 산이 지나는 산줄기를 타고 수 마일을 지났다. ‘내포’의 어귀와 마주한 레드우드 숲을 어림잡아 12마일 지나자, 일행은 ‘내포’의 어귀와 마주한 두 개의 점처럼 보이는 지점을 볼 수 있었다. 일대에는 소 발굽 같은 커다란 사슴 발자국이 널려 있었다. 병사들이 사슴 한 마리를 사냥했다.
일행은 북동쪽을 끼고 달려, 북쪽에 있는 광활한 만을 볼 수 있는 작은 산등성이에 올랐다. 다시 해변을 끼고 원주민 마을 2개를 지나 3마일을 더 전진했다. 그리고 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내에서 야영했다. 별빛이 총총하게 빛나는 밤이었다. 밤새 그렇게 달라붙던 모기는 아침이 되자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서 햇살은 점차 따사로웠다. 산 파블로 내포인 바히아 그란데(Bahia Grande)로부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깃털과 꽃으로 머리를 장식한 원주민들이 선물을 가득 안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새벽부터 일행에게 다가왔다. 일행은 원주민의 초대를 받아 축제가 한창인 원주민 마을을 찾았다. 일행은 원주민들과 어울려 춤과 노래를 즐기고 차려놓은 음식도 대접받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디 안자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그리고 준비해 간 유리구슬을 원주민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 떠나는 일행에게 원주민들은 섭섭함을 표했다.
점차 높아지는 산줄기를 타고 일행은 강과 내포가 만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했고, 모두 정착촌을 세우기에 알맞은 곳이라 생각했다. 디 안자는 샌프란시스코 강이 양편이 낮은 언덕으로 이루어진 분지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으로는 약 18마일의 광활한 평원이 펼쳐진 신선한 물이 항상 흘러드는 포구라고 생각했다.
근처에는 갈대로 엮은 작은 배가 매여 있었고, 또 다른 갈대 배에는 원주민 2명이 고기잡이 중이었다. 이들은 그물이나 낚시 대신 물속으로 잠수한 후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내포의 어귀는 약 0.75마일. 샌프란시스코 내포는 항상 신선한 샛강 물이 흘러드는 포구였다.
일행은 계속 해안을 따라 오후 5시 반까지 남동쪽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물맛이 별로인 산타 안젤라(Santa Angela) 방죽 옆에서 야영했다.

4월 3일 수요일부터 4월 4일 목요일까지 (호르…출발 188일부터 189일까지)
일행은 동쪽을 향해 평원을 가로질러 9마일을 달려 작은 산기슭을 올랐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포’의 모습을 살폈다. 동쪽으로 펼쳐진 너른 바다는 낮은 섬으로 둘러싸인 세 개의 하구처럼 보였다.
당시 폰트 사제조차 이 내포에 대한 확고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페이지(Fages) 지사 재임 시 탐험에 참가했던 상병 로블스(Robles)와 소버레인(Soberanes) 병사는 분명 이 광활한 물이 강물이라고 주장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그 자신도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당시 스페인 정착촌은 바다 가까이에 있거나 근방에 자리 잡았다. 내륙 지역에 대한 지식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폰트 사제가 가진 지도에도, 해안과 분지 사이에 있는 험준한 바위산과 높은 산 때문에 남쪽의 산 안토니오와 산 루이스 오비스포 선교원까지는 너른 습지가 가로지르기 불가능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디 안자와 일행은 동쪽으로 향했다. 마침 달리는 한 떼의 사슴을 발견한 병사들이 사냥에 나섰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어 험준한 인근 바위산에 사는 원주민 사냥꾼들과 마주쳤다. 그중 한 원주민은 사슴 머리처럼 피부 전체를 문신하고 있었다.
일행이 다시 전진하자 연어 4~5마리를 들고 있는 원주민들을 만나, 이 근방의 내포에는 검붉은 큰 연어가 지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날 일행은 18마일을 탐험한 후, 이제는 유령 마을이 되어버린 산 리카르도(San Ricardo)에서 야영했다.
4월 4일 아침 7시, 일행은 산 리카르도를 떠나 해안을 끼고 동쪽으로 향했다. 얼마 후 팔뚝 깊이의 물살을 피해 왼편으로 돌았다. 9마일을 물길과 소택지를 도보로 지났다. 걷기에 지친 일행은 다시 말을 타고 남동쪽으로 향했다. 약 15마일을 지난 후, 일행은 북쪽으로 흐르는 큰 강과 마주했다.
사방은 끝없이 펼쳐진 습지의 갈대밭이었다. 몬트레이 출신 병사들은 산 안토니오와 산 루이스 오비스포 선교원에서 75~90마일 거리에 동일한, 지나갈 수 없는 습지대가 있다고 말했다. 디 안자와 일행은 시에라 네바다와 습지대의 물이 호수로 유입되고, 이 물이 자연 강을 이루어 내포로 흘러든다고 결론지었다.
이 같은 유추에 만족한 디 안자는 마침내 몬트레이 수비대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행은 오른편에 늘어선 험준한 바위산을 오른 후 기름진 평원과 평평한 평원을 지나 남서쪽으로 향했다. 산타 클라라 계곡을 지나자, 일행이 ‘실망의 산’이라고 부른 시에라 델 차스코(Sierra del Chasco)가 일행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다시 길고 지루하고 험난한 36마일의 길을 달려 식수와 땔감이 넉넉한 곳에서 야영했다.

4월 5일 금요일부터 4월 8일 월요일까지 (호르…출발 190일부터 193일까지)
4월 5일 굿 프라이데이. 날씨는 청명하고 사위는 고요했다. 전날 뒤따르며 괴롭히던 강한 바람도 없었다. 완연한 봄날씨는 따사로웠다.
아침 7시, 일행은 앞을 가로막는 험준한 바위산을 지났다. 이번에 지나는 방향은 아직 탐험해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일행은 미로처럼 좁은 계곡과 거친 산세에 놀랐다.
때때로 동쪽에 보이는 넓고 거대한 습지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였다. 남서쪽으로 난 작은 샛길에는 많은 장애물이 보였다. ‘내포’ 주변과 달리 이 지역에는 원주민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버려진 초라한 초옥만이 보였고, 먼 곳에서 놀라 달아나는 원주민 한 명이 보였다. 오래전에는 근방에 많은 원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보였다.
험한 길을 어렵사리 20여 마일 지난 후, 일행은 고지대에 펼쳐진 계곡에 야영장을 마련했다. 빈센트 성인 축제 다음 날이라 이곳을 산 빈센트(San Vincent)라고 불렀다.
4월 6일 토요일, 일행은 이해되지 않는 공포스러운 계곡과 깎아지른 절벽을 만나 부득이 되돌아갔다. 일요일 부활절 미사 후, 카요티 계곡으로 내려와 파하로(Pajaro) 강을 건너 오늘의 길로이 지역 온천을 지나 산타 클라라로 불리는 산버나디노 지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바닷물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곳에 오후 들어 야영장을 마련했다.
4월 8일 오전 10시 30분, 일행은 몬트레이 수비대에 도착하여 대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디 안자 사령관은 모라가 중위에게 지휘권을 이양한 후, 사타구니와 다리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카멜 선교원으로 향했다. 이날 오후 종군 사제 폰트가 동행하여 세라 신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디 안자가 ‘좋은 약초의 땅’이라고 부른 샌프란시스코 내포 일대에서 수비대와 선교원, 정착촌 부지를 선정하고 17일 만에 돌아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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