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ZT 어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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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아리조나] Sf만 언덕에 정착지를 마련하다 -이범용(시인, 전 여성지 '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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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 목요일부터 5월 4일 토요일까지(호르…출발 217일부터 219일까지)
이처럼 정착민 이주에 따른 제반 문제를 리베라 캘리포니아 지사와 협의한 후 디 안자는 2일 오후 산가브리엘 선교원 사제들과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나 리베라 지사는 디 안자 편에 멕시코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감한다는 이유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디 안자와 함께 떠나는 일행은 스페인어를 정식으로 배우려는 어린이를 포함하여 30명이 되었다. 가축은 86마리, 짐 실은 노새는 20마리가 되었다. 일행은 6마일을 달려 4개월 전 야영했던 장소에 다시 야영장을 차렸다. 그러나 날씨는 4개월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4개월 전 야영할 때는 뼈속까지 쑤시는 추운 겨울이었으나 오늘의 오후는 뜨거운 더위였다.
금요일 일행은 ‘곰들의 냇물’을 지날 즈음 10시간은 무더운 시간대라 3시간 동안 낮잠 시간을 가졌다. 디 안자 일행이 야영장을 마련할 때 리베라의 전령이 멕시코 산페르난도(San Fernando) 수도원장에게 전달해 달라는 리베라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리베라는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는 자신이 직접 전달하겠다는 짧은 내용을 부기했다.

5월 5일 일요일부터 5월 7일 화요일까지(호르…출발 220일부터 222일까지)
디 안자 사령관은 부하들을 독려, 하루 평균 36마일을 달려 오늘의 보우티스타 계곡과 차푸리 계곡인 발레 디 산호세프(Valle de San Josef)를 향해 말을 몰아 산카를로스(San Carlos)가 보이는 터윌리거(Terwilliger)에 들어섰다. 따사했던 5월의 날씨는 갑자기 소낙비를 뿌리더니 마침 불어온 북서풍으로 기온은 급강하했다. 실제 체감 온도는 지난 해 12월보다 더 추웠다.
일행은 묵묵히 말을 몰아 카요테(Coyote) 계곡에 들어섰다. 이어 계속 말을 몰아 산타 카타리나에서 야영했다. 다음 날인 6일 일행은 새벽녘에 말을 몰았다. 마침 계곡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먼지를 동반한 거친 바람이 일행을 덮쳤다. 보레고(Borrego) 계곡에 들어서자 먼지를 동반한 바람은 잦아들었다. 그리고 생명을 거부하는 거친 돌과 모래 둔덕의 사막이 앞을 가렸다.
일행은 산그레고리오(San Gregorio)에서 잠시 지친 말과 노새에게 숨을 고르게 했다. 근처에는 마침 자그마한 물웅덩이가 있어 운 좋게 일부 가축들이 목을 축였다. 오후 7시 30분 일행은 산세바스쳔(San Sebastian) 습지대에서 야영했다.

5월 8일 수요일부터 5월 9일 목요일까지(호르…출발 223일부터 224일까지)
하늘을 나는 까마귀처럼 일행은 가장 험하다는 산세바스천과 콘셒션(Concepcion) 사이 사막을 헐떡이며 지났다. 사람과 가축 모두 숨을 헐떡였다. 산타로사(Santa Rosa)와 산타오라야(Santa Olaya) 거친 사막의 길은 무려 40여 마일이었다. 디 안자 사령관과 동행한 일부 병사는 지옥 같은 이 노선을 무려 네 번째 지난다고 했다.
이제 이 지역을 훤히 꿰뚫은 디 안자는 짧으면서 안전한 길을 내다볼 수 있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세로 디 산파블로(Cerro de San Pablo)로 가는 지름길을 택했다. 이 지름길은 종전 그가 다니던 32마일보다 무려 7마일이 줄어드는 길이었다. 그러나 일부 병사들은 이 노선이 생각보다 매우 위험하다며 재고해 줄 것을 청했다. 디 안자 사령관은 쾌히 병사들의 청을 받아들여 종전 노선인 엘카리잘(El Carrizal)과 산타 오라야(Santa Olaya) 노선을 택했다.
날은 점차 뜨거워갔다. 디 안자 사령관은 산 세바스천을 출발하기 전 모든 가축들에게 넉넉히 물을 마시게 했다. 산안셀모(San Anselmo)를 지난 일행은 동남동쪽을 향해 36마일을 지났다. 그리고 한밤중 일행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사막에서 추운 밤을 보냈다.
5월 9일 목요일해가 뜨기 한 시간 전 일행은 ‘기쁨의 우물’로 알려진 엘카리잘(El Carrizal)까지 24마일을 달렸다. 그러나 기쁨의 물은 언제부터인가 염분투성이에다 검붉은 물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갈증이 심한 일부 가축들은 탁한 물이라도 마셔 갈증을 달랬다.
뜨거운 햇살이 어느새 꺾이자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서 산타오라야에 도착했다. 이날 일행은 근 75마일을 주파했다.

5월 10일 금요일부터 5월 12일 일요일까지(호르…출발 225일부터 227일까지)
날이 밝은 후에야 산타오라야 원주민들은 디 안자 일행이 도착한 사실을 알았다. 원주민들은 옥수수, 콩, 그리고 호박 같은 먹거리를 들고 디 안자 일행을 찾아 재회를 반겼다. 디 안자 일행은 또한 가축들에게도 물을 찾아 마음껏 물을 마시고 초원에 풀어 배불리 풀을 뜯게 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일행은 오후 들어 강한 햇살이 한풀 꺾인 뒤 북북동쪽으로 한밤까지 12마일을 달려 코하트(Cojat)에 도착했다.
11일 토요일 날이 밝자 일행은 홍수로 물이 넘쳤던 들판과 강을 돌아 콜로라도강 상류를 향해 말을 달렸다. 디 안자 일행을 다시 만난 원주민 남녀노소들은 막대기를 들고 일행에 앞서 길을 나서 오전 11시 콘셒션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했다. 지난해 12월 가르세 신부가 떠난 이래 외롭게 단신 전교하던 아이하르츠(Eixarch) 신부가 일행을 열렬히 환영했다.
5월 13일 월요일부터 5월 15일 수요일까지(호르…출발 228부터 230일까지)
인근 산을 하얗게 덮었던 눈과 얼음이 따사한 햇살에 녹아내리면서 콜로라도강 물은 만수를 이루어 거칠게 흘렀다. 콘셒션 마을 북쪽 들판은 홍수로 돋아난 풀들이 바다처럼 푸르렀다.
일행은 두 차례나 힐라강 상류를 건넜다. 강은 이제 바다가 되어 건너기가 어려웠다. 콘셒션에는 100야드 길이의 소용돌이치는 해협과 물살을 품고 있었다. 이곳은 팔마(Palma) 추장과 그의 부족들이 누대에 걸쳐 살아온 터전이다. 이곳 지리에 밝은 팔마 추장과 주민들은 디 안자 일행을 이곳에서 건너게 할 예정이었다.
원주민들은 우선 뗏목을 만들 나무기둥을 엮어 정오경 첫 번째 뗏목을 완성했다. 뗏목을 만들어 강에 띄운 후 짐을 옮겨 실었다. 그리고 뗏목에 연이어 나무기둥을 덧대어 다시 또 하나의 뗏목을 만든 후 짐과 어린아이들을 태웠다. 수영에 능한 여인네들은 진흙 항아리에 물건을 옮겨 담은 후 항아리를 들고 강을 건넜다. 두 개를 덧댔던 뗏목은 강을 건넌 후 각각 두 개로 나누었다.
이 같은 작업은 오후 6시경 끝냈다. 이 뗏목에는 디 안자를 비롯하여 토마스 신부, 폰트 신부를 비롯해 투산으로 돌아가는 병사 13명의 짐을 실었다. 디 안자와 사제들, 그리고 병사들이 탄 뗏목이 제방을 떠나자 이어 준비 중이던 다른 통나무 뗏목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겁을 먹은 두 사람이 제방으로 뛰어오르면서 일행은 모두 물에 빠지고 뗏목은 가라앉아 떠내려갔다. 이유는 과적 때문이었다.상황이 악화되자 일행은 다시 제방에 올랐다. 물속에서 뗏목을 밀어주던 원주민들도 제방에 올랐다. 그러자 일부 원주민들은 이번 도강을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에 노한 팔마 추장의 아들 파블로(Pablo) 추장은 불같이 노해 단독으로라도 디 안자 일행을 도강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 같은 파블로 추장의 의지를 읽은 원주민들은 다시 뗏목 주위에 모여들었다.제방에서 이를 지켜보던 200여 명의 원주민들도 너나없이 모두 물속으로 뛰어들어 디 안자의 도강을 도왔다. 원주민들이 소리치고 난리를 치는 사이 한 병사가 이를 진정시키려 화승총을 발사했다. 웬만큼 소란이 진정된 사이 뗏목은 다시 하류의 제방에 닿았다. 무엇보다도 원주민들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가축이나 일행의 소지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디 안자와 일행은 헌신적인 팔마 추장의 호의와 원주민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특히 수영에 능한 여인네들은 손수 짐을 지고 수영으로 건너편 제방까지 물건을 운반했다.
이번 탐험 여행에서 디 안자 사령관은 가장 악몽 같은 4일을 보냈다. 이번 도강에서 디 안자 일행이 잃어버린 물건은 말 발굽을 넣은 상자였다. 물에 가라앉는 것을 뻔히 보고도 잡지 못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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