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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용 아리조나 역사이야기] 나바호 족의 '멀고도 먼 길' – 8천여부족 '죽음의 땅 레돈도'로 강제 이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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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제들 농경기술을 전수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의 영토안에는 낯선 이방인들이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낯선 이방인들은 조상 전래의 신성스런 땅을 헤집고 양이나 말같은 가축을 기르면서 본래 주인인 “사람”들을 몰아냈다. “사람”들은 자신의 땅을 기웃거리는 스페인 사람들을  나카이 즉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대신 스페인들은 “사람”을 나바호라고 불렀다.


나바호 부족은 보통 나르보나 패스 북쪽의 세이요새를 나바호족의 최고의 성지로 여겼다. 나바호 들은 나브로나 패스를 코퍼 패스라고 불렀는데 이 패스가 지나는 추스카 산맥을 남성 신령의 몸체, 정상은 머리, 나브로나 패스는 목이라고 믿었다. 또한 이들은 투니차와 루카추카 산맥은 신령의 몸체이고 카리조 산은 다리와 발이라고 믿었다.

나바호 부락에 정착하여 전교하던 스페인 선교사 베네비데스 신부는 1630년 나바호 족과 테와 족간의 불화도 조정하면서 원주민들과 그런대로 깊은  신뢰를 쌓아갔다. 그러나 당시 뉴 멕시코 총독 루이스 드 로사는 나바호 원주민을 다루는 문제로 선교사들과 불화를 빚었다.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지자 총독은 일부 나바호 부족들을 선동하여 선교사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이에 선교사들도 이들 나바호 족들의 옥수수 밭을 불태우고 반항하는 나바호들을  잔인하게 응징하고 포로로 삼았다.

  

원주민과 정착민 간에 불화가 시작


세월이 흐르면서 스페인 정착민들이 점점 늘어나자 가축을 키울 목초지나 곡물을 키울 농토를 잃은 나바호들의 저항도 점점 심해졌다. 양측간에는 약탈과 보복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1644년 스페인 병사들이 산 후안 강을 따라 주변에 사는 나바호들을 무차별 살육했다. 

1659년 베르나르도 로페즈는 40여명의 병사와 800여명의 원주민을 이끌고 나바호 영토롤 점령하는가하면 테와 인디안 부락으로 교역차 방문한 나바호들을 살해하고 포로는 노예로 삼았다.


스페인과 나바호 부족간의 불화는 계속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바호들은 스페인 정착민들을 약탈하고 스페인 측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나바호들이 애써 가꾼 옥수수 밭이나 콩 밭 그리고 마을을 불태웠다. 1669 스페인은 아코마 근방에 사는 나바호 부락을 공격하여 마을을 모두 불태우고 반항하는 나바호들을 무차별 살해했다. 이어 1677년부터 1678년까지 2년에 걸쳐 스페인은 나바호들의 약탈에 대한 보복으로 3차례에 걸쳐 초토화 작전을 벌이고 나바호들을 노예로 삼기위해 대대적인 생포작전을 벌이기도했다. 

나바호 부족의 이웃 호피 인디안들도 스페인측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1680년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일부 나바호 전사들은 의용군으로 반란군에 가담하여 스페인 정착민과 사제들을 멕시코로 몰아냈다. 그러나 쫒겨갔던 스페인들은 1692년 더많은 병사들을 데리고 돌아와 아파치와 나바호 영토를 제외한 남서부 일대를 모두 손에 넣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스페인 정착민들은 나바호 영토를 계속 잠식하는가하면 나바호 들의 영토는 점점 줄어들었다. 광활한 남서부 일대는 나바호 부족과 아파치 부족 이외의 원주민은 모두 스페인에 항복한 상태였다.


1786년 뉴 멕시코 총독 후앙 보티스타는 싸움으로는 나바호들을 정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들과 화평을 맺었다. 잠시 양측간에 약탈과 보복이 사라지는가했으나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스페인측은 약속을 어기고 나바호의 영토를 다시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은 다시 시작되었다.

1804년 나바호들은 양떼를 키울 목초지를 탈환하려 체보레타의 스페인 수비대와 정착지를 공격하기도하고 1805년 스페인측에서는 세이협곡을 공격하여 나바호부족 115명을 살해하고 33명의 여인네와 어린이를 생포하여 노예로 삼았다.


1821년 멕시코가 나바호 영토 일대를 차지하자 나바호들은 이제 멕시코를 상대로 투쟁을 벌였다. 멕시코의 브라스 드 히노호스 대위는 1835년 2월 노예사냥을 위해 병사 1,000여명을 이끌고 산타 페를 떠나 나바호 영토로 향했다.

2월28일 나바로나는 멕시칸 병사들이 세이 협곡으로 오자면 코어퍼 패스를 지날 것으로 보고 그의 전사 200여명을 매복시켰다. 그리고 멕시코 병사들이 일렬종대로 좁은 험로를 지나자 부엉이 소리를 신호로 화살을 퍼붓거나 바위돌을 굴리거나 돌로 공격하여 인솔자 브라스 대위를 포함하여 멕시코 병사 대부분이  전사하고 일부만 달아났다. 지금도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에는 전사자들의 백골이 이따금  발견되고 나바호 전사들이 바위를 오르기위해 사용하던 나무사다리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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