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원 목사 알수록 재미있는 성경 나눔] 태산같은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78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이혼한 부부처럼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언약을 깨뜨렸다. 언약의 회복은 피의 희생을 요구한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과 시내산의 언약 그리고 제사제도는 희생의 제물을 필요로 한다. 이 모든 것은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예표이고 십자가에서 완성된다. 이삭은 예수님의 모형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모리아 산을 향해 걸어갔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셨다. 예루살렘이 예수님이 가야 할 최종 목적지였다. 이삭이 등에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른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다. 당시 이삭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낳고 127세의 나이로 죽은 것을 고려하면 이삭의 나이는 37세일 것으로 추정된다. 탈무드에는 이삭이 40세에 14세인 리브가를 만나 결혼한 것을 고려하면 당시 이삭의 나이가 26세라고 한다. 이삭은 힘으로 아버지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자발적으로 아버지를 도와 자신을 묶고 번제단에 올라 죽기까지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삭이 모리아 산에 도착하여 제단에 바쳐진 때는 유월절 절기 때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독자를 아끼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은 독자를 아끼지 않으셨다. 마지막 순간에 이삭은 극적으로 죽음에서 구출되었지만 예수님은 죽음을 당하셨다. 그것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삭이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 모리아 산은 성전 산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곳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 즉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낸 최초의 제사장이었다. 그에게 모리아 산은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순종의 장소였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의 장소였다. 그는모리아 산 정상에서 세상을 품은 믿음의 아버지로 우뚝 섰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말씀처럼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얻었다.
영화 ‘폴: 600미터’에서 주인공 베키는 함께 암벽등반을 하던 남편이 추락사하면서 사막 한가운데 600m 상공에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다. “죽는 게 두렵다면 사는 걸 겁내지 말라 (don’t be afraid to live)”는 남편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는 친구와 함께 사막에 방치된 낡은 송신탑 꼭대기에 오른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서려는 순간 삐걱거리던 사다리가 송두리째 떨어져 내린다. 둘은 이제 다리 뻗기도 힘든 좁은 공간에 고립된다. 눈을 뜨기도 아찔한 그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무섭고 떨리는 건 아직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죽으면 무섭지도, 떨리지도 않는다. 막막한 허공 위에 있더라도, 다리가 후들거리더라도 로프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 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을 멈춘다면 죽는 수밖에 없다. 한 발 더 내딛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후회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결국 살 길을 찾아낸다.
아브라함이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을 때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시험의 목적이었다. 히브리어 “야레(Yare)”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존경하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두려움과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직 하나님 만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를 두렵게 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여 눈치를 보고 억지로 비위를 맞추거나 사업의 실패, 결혼의 실패 등 각종 실패로부터 오는 두려움에 마음을 졸이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그는 수풀에 걸려있는 숫양을 발견하고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 그리고 그 곳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 “여호와 이레 (Adonai yireh)”는 본다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라아(ra-ah)”에서 온 단어로 하나님이 보신다.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공급하신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8장에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는 말씀이 나온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보고 기뻐했을까? 그는 눈을 멀리 들어 눈부시게 찬란한 미래를 보았다. 그는 하나님이 어린 양을 준비하고 공급하시는 분임을 알았고 자신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친 것처럼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님을 제단에 바치고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계획과 비전이 가슴에 와서 박혔고 그는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소명을 자각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이 한점 후회가 남지 않는 가슴 벅찬 삶을 살고 행복하게 한다.
정기원 목사 (602)804-3080
